시장 뒷모습은 마치 사람의 뒷모습을 닮았다. 앞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뒷모습에서 아련히 배어 나온다. 삶의 뒤안길이 이러한 모습일까? 낡은 천막 위로 다시금 눈이라도 쌓였으면 좋겠다.
시장 뒷모습은 마치 사람의 뒷모습을 닮았다. 앞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뒷모습에서 아련히 배어 나온다. 삶의 뒤안길이 이러한 모습일까? 낡은 천막 위로 다시금 눈이라도 쌓였으면 좋겠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신간이었나? 아니면 마을의 수호신이었나? 그것도 아니면 그저 입신양명의 기원이었나? 오리가 앉아 있진 못해도 비둘기 가득한 이 광장에서 너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광장에 더 이상 지킬 것이 무엇이 남아있는가? 아! 애달픈 광장의 그림자여! 희미한 옛사랑이여!
고분 옆 억새가 운다. 그녀만큼이나 갸날픈 잎새가 흔들리며 운다. 깊고도 깊은 시간이 가늘디도 가는 몸짓으로 그렇게 운다. 벚꽃 흐드러지게 피던 날, 고분 한 편에서 그녀가 운다. 소리도 없이 억새가 운다.
징검다리를 건너다 멈춰 선 그가 보는 것은 무엇일까? 저 일렁이는 심연에 무엇이 있길래 저리도 골똘한 모습으로 강을 응시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러다 문득 마음의 소리는 듣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개 같은 먼지를 뚫고 해가 솟아오르는 소리, 멈춘듯한 강 아래로 물이 흐르는 소리, 깃털보다 더 가벼운 새의 날갯짓 소리, 그리고 어느새 다가온 봄이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 아! 세상은 온통 '소리'로 가득하다.
햇볕을 등지고 소년이 달려 나갔다. 언덕을 넘어, 오늘을 넘어 눈앞에서 내일로 사라졌다. 겨울 볕은 남아 아직도 저리도 반짝이는데, 내 유년은 어디에 잠들어 있는가? 기억의 빈자리에 소년의 그림자만 환영처럼 남아있다.
섬이 있다. 보일 듯 말 듯 한 그 섬이 있다. 갈매기 한 마리 날지 않는 이 상념의 끝에서 둥둥 바다로 떠난 그 오래된 섬이 내 가슴에 있다.
선(線)과 면(面)이 만나면 공간(空間)이 된다. 공간은 다시 누군가의 기억(記憶)이 되고 기억은 시간(時間)의 흔적(痕跡)으로 남는다. 고분군에서 나는 아득한 선과 면의 기억을 더듬고 있다.
늦은 오후의 볕이 쏟아진다. 16시 41분 14초, 그 빛 속으로 사람들은 총총히 걸음을 옮기고 희미하게 남은 그림자도 다시 빛 속에 묻혀 보이질 않는다. 16시 41분 14초, 내게 있어서 빛났던 청춘의 시간은 어디에 잠들어 있는가? 아니 누구의 기억 속에 그저 그렇게 묻혀 있는 것인가? 16시 41분 14초, 서울역 대합실에서 나는 오래전에 떠난 기차를 아직도 붙들고 있다.
1980년 시계탑 앞의 그날은 다 어디로 가고 없는가? 지하철에서 에스컬레이터로 이어지는 공간은 온실의 돔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시간은 돌고 도는 것이 아니라 담배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아득한 기억만이 냄새처럼 남아 가슴에 배는 것을.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떠밀려 올라탄 이 강은 또 어찌 건너야 하는가? 길을 잃을 것 같은 오늘은 그저 눈이라도 펑펑 내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