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통해 밖의 풍경이, 소리가, 세상이 안이 되어 들어 오기도 하고 때로는 안의 삶이 밖으로 새 나가기도 한다. 그래서 창문은 때로 닫히기도 하고 때로 열리기도 한다. 굳게 닫힌 창문 아래의 낙서는 누구와 이야기하고 싶은 흔적이었을까? 아니면 열리지 않는 마음을 향한 외침이었을까?
창문을 통해 밖의 풍경이, 소리가, 세상이 안이 되어 들어 오기도 하고 때로는 안의 삶이 밖으로 새 나가기도 한다. 그래서 창문은 때로 닫히기도 하고 때로 열리기도 한다. 굳게 닫힌 창문 아래의 낙서는 누구와 이야기하고 싶은 흔적이었을까? 아니면 열리지 않는 마음을 향한 외침이었을까?
거리의 밤은 밝은 만큼이나 짙고도 어둡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흔들려 보이는 까닭은 비단 취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저 텅 빈 길 끝에 어둠처럼 서 있는 그림자는 누구의 시간인 것일까?
이제 아침저녁으로는 완연한 가을입니다.
제가 늘 흑백사진만 올리니 흑백사진만 찍는다고 알고 계신 분이 있어서 오랜만에 컬러사진을 올려봅니다.
세상 살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요즘 들어서 흑백논리 안에만 갇혀계시는 분들이 더 늘어난듯합니다.
어찌 세상 일이 두 가지로만 양분되겠습니까?
컬러 사진처럼 수많은 색이 있는 법이고 하물며 흑백사진도 수많은 색(농담)이 있는데 말입니다.
경산에 있는 큰아버님 묘소에 들리면서 무학산 자락의 천년고찰인 환성사에 다녀왔습니다.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은 없지만 입구의 수월당과 몇 군데가 복원되어 있었습니다. 대구의 문화재 복원 전문가이신 차정보 형님의 손길을 거쳤다고 생각하니 좀 더 친근함이 묻어났습니다.
수월당에서 잠시 쉬다 성전암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습니다. 예전 산비탈의 샛길은 아이들에게 무리가 있을듯하여 새로 길을 낸 곳을 따라 쉬엄쉬엄 걸어 올라갔습니다. 가는 길에 늦은 매미소리 하며 이름 모를 새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좀 더 귀를 귀울이자 후투둑 후투둑 떨어지는 도토리 열매 소리 하며, 나뭇가지 사이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까지 들려왔습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이고지고 있었던 세상사 모든 근심을 어느덧 다 잊어버리고 풍경과 소리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문득 세상사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벗어나면 이리도 편한 것을 말입니다. 한 시간 남짓한 산행에서 얻으려고 마음 쓴 것은 없었지만 너무도 많은 것을 얻은 하루였습니다.
사진은 환성사 일주문입니다. 원래 석기둥만 남아있는 것을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환성사. 참으로 아련함이 감도는 사찰이다. 일주문도 다시 세워졌고 수월관과 그 앞의 연못도 저처럼 다시 복원되었는데 언제쯤이면 그 옛날의 영화를 만날 수 있을까? 전해오는 옛이야기가 번뇌처럼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