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바라본 내가 강 건너 저 편에 서 있었다. 현실은 강 이쪽에 발을 딛고 서 있는데 내 마음은 마치 풍선장수의 리어카에 묶여있는 풍천처럼 강 건너 기슭에서 동동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먼 훗날 저 기억의 강이 다시 묻히면 나는 다시 하나가 될까? 내 마음은 하늘로 날 수 있을까?
어느 날 문득 바라본 내가 강 건너 저 편에 서 있었다. 현실은 강 이쪽에 발을 딛고 서 있는데 내 마음은 마치 풍선장수의 리어카에 묶여있는 풍천처럼 강 건너 기슭에서 동동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먼 훗날 저 기억의 강이 다시 묻히면 나는 다시 하나가 될까? 내 마음은 하늘로 날 수 있을까?
담이란 이런 것이다. 경계의 구분이 높거나 또한 낮지 않으면서도 적당하게 열려있는, 자연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격이 있는 이런 담이 나는 좋다. 사람도 그러하다.
한때, 저곳은 수많은 광부들과 광차들이 붐볐으리라. 이제는 흔적만이 남아 관광객들에게 마지막 남은 퀴퀴한 숨결마저 내어주고 있다. 궤도 사이로 자라는 버섯들은 분명 그대들이 흘린 땀과 눈물로 자랐으리라. 오늘도 그곳에는 가래 끓는듯한 바람소리가 지나고 있을까?
내게 종교가 없듯 내가 올리는 많은 사진들 중에서 특정 사진을 두고 종교사진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그 대상이 부처이든 예수이든 경외심이 들 때가 가끔은 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팔공산 동화사마애불좌상이다. 마애불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깊은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손을 모으게 된다. 예술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