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 없는 거리에 늘 붙는 '폐업 정리' 전단이 바람에 날린다. 저런 류의 전단이 어제오늘은 아니지만 텅 빈 거리와 어쩌다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의 걸음과 몸짓을 통해 또 다른 현실이 된다. 사진도, 산다는 것도 참 쉽지가 않은 일이다.
별것 없는 거리에 늘 붙는 '폐업 정리' 전단이 바람에 날린다. 저런 류의 전단이 어제오늘은 아니지만 텅 빈 거리와 어쩌다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의 걸음과 몸짓을 통해 또 다른 현실이 된다. 사진도, 산다는 것도 참 쉽지가 않은 일이다.
성곽과도 같은 언덕 길의 겨울 볕이 더욱 짧아졌다. 쪽빛 속에 열려 있는 저 창문은 누가 두고 떠난 것일까? 유년의 골목이 그립다.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 계단을 바삐 오르는 숨 가쁜 소리에 한여름의 더위가 그대로 묻어난다. 전쟁과도 같은 이 계단의 끝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나무가 눕는다. 고분 위에 그림자로 누운 나무는 오래도록 꿈을 꾼다. 지난 가을의 그 짙었던 향기와, 금계국 위로 무수히 쏟아지던 여름날의 푸른 별빛이며, 가지를 스치고 지나는 봄날의 바람결과도 같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젊은 날들의 초상에 대한 꿈을 꾸고 있다. 그러고 보니 한 겨울,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가련한 꿈을 꾸는 것은 어쩌면 나무가 아니라 나 인지도 모르겠다.
징검다리를 건너다 멈춰 선 그가 보는 것은 무엇일까? 저 일렁이는 심연에 무엇이 있길래 저리도 골똘한 모습으로 강을 응시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러다 문득 마음의 소리는 듣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역 대합실에 한 여름이 가득하네. 시간이 푹푹 익어가는 대합실 시계는 13시 34분 55초에 걸려있네. 한 여름이 서울역 대합실에서 그렇게 익어가네.
섬이 있다. 보일 듯 말 듯 한 그 섬이 있다. 갈매기 한 마리 날지 않는 이 상념의 끝에서 둥둥 바다로 떠난 그 오래된 섬이 내 가슴에 있다.
아직 여름이 채 가시지 않은 초가을 신천에 파도가 인다. 오후는 아직도 등 뒤에 걸려 있는데 하늘에서부터 짙은 구름이 몰아치고 내 마음도 덩달아 파도처럼 일렁거린다, 깊지 않은 마음이란 이리도 흔들리기 쉬운 것인가? 상처가 아무는 것이 이리도 쉽지 않은 것인가?
신천동 언덕길을 부부가 함게 내려가고 있다. 함께 하는 모습은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다운 법이지만 오랜 시간 함께했을 동행의 모습에서 새삼 나는 여름날 강가의 조약돌보다 더 빛나는 삶을 본다. 나도 저럴 수 있을까? 신천동 오후의 그림자는 길어만지는데 인생의 내리막길, 그 길을 함께하는 저들의 동행은 참으로 아름다운 소풍 길의 모습이다.
달리는 자동차나 기차, 또는 무빙워크에서의 시간은 방향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어쩌면 프레임에 갇힌 세상 또한 그러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내가 보는, 내가 속한 세계는 항상 순방향이며 반대의 세계는 함께할 수 없는 역방향의 시간이다. 이 티끌만 한 공간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한 방향만 바라보는 고깔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