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사이에 버스에 사람이 오르고 그림자처럼 환영이 보였을 때, 버스가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버스는 마치 이웃집 토토로의 고양이버스와 같이 어둠속으로 긴 궤적만 남기고 이내 사라졌습니다. 어디선가 방울소리만 또렸하게 울립니다. 신천동 버스정류장의 밤은 또 그렇게 깊어갑니다.
잠깐 사이에 버스에 사람이 오르고 그림자처럼 환영이 보였을 때, 버스가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버스는 마치 이웃집 토토로의 고양이버스와 같이 어둠속으로 긴 궤적만 남기고 이내 사라졌습니다. 어디선가 방울소리만 또렸하게 울립니다. 신천동 버스정류장의 밤은 또 그렇게 깊어갑니다.
요새가 닫혀진 공간이라면 바다는 열려진 공간입니다. 요새와 바다는 닫혀진 공간과 열려진 공간과의 경계이자 충돌지점입니다. 어쩌면 새로운 문화는 이렇게 접점의 충돌로 형성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멀리만 보면 가까이 있는 소중한 것들을 미처 헤아리지 못하기 일쑤이다. 가까이 있는 것들만 챙기다 보면 한발 더 멀어지는 게 꿈인지도 모른다. 지천명(知天命)을 지나면서도 조화롭게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왜 였을까? 새벽의 강과, 물 안개와, 일출이 문득 떠오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꿈인 듯 현실인 듯 새벽의 강에서 나는 물기 가득한 그녀의 머리결을 건져올린다.
구름 한 조각이 마치 연기처럼 높다란 지붕 위에 걸렸다. 해 그림자 골목에 눕고 나면 밥 짓는 연기며 생선 굽는 냄새가 골목을 가득 메울까? 가로등 불빛 사이로 바쁜 귀가의 발걸음 너머, 온 가족 도란도란 모여않아 오래전 기억 속 그 '봄꽃' 피울 수 있을까?
우연히 왔었던 이 골목에서 내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김광규 시인의 시(有無)처럼 행인들과 자동차와 가로수와 담배 가게와 길가의 리어카에서 보던, 세상 어디에나 있는, 그러나 손으로 붙잡으면 여전히 아무 곳에도 없는 그것이었을까? 햇살 쏟아지는 여름날 오후, 여전히 난 이 골목의 시작과 끝에서 그것을 애써 붙잡으려고 하고 있다.
지하철 안은 실재하는 현실의 공간이자 다양한 군상의 시간들이 교차하는 허상의 공간이기도 하다. 옷감이 만들어지듯 각자의 삶들이 씨줄과 날줄로 모여 직조(織造)되는 공간의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인가? 찰나의 시간 속에 만나는 인연(因緣)이 이러한 것인가?
늦은 오후의 볕이 쏟아진다. 16시 41분 14초, 그 빛 속으로 사람들은 총총히 걸음을 옮기고 희미하게 남은 그림자도 다시 빛 속에 묻혀 보이질 않는다. 16시 41분 14초, 내게 있어서 빛났던 청춘의 시간은 어디에 잠들어 있는가? 아니 누구의 기억 속에 그저 그렇게 묻혀 있는 것인가? 16시 41분 14초, 서울역 대합실에서 나는 오래전에 떠난 기차를 아직도 붙들고 있다.
동네의 낡은 집들과 좁은 길은 어쩌면 기억 속의 그림자로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때로 겨울바람과 오후의 짧은 햇볕이 그림자로 남고 또 그 그림자를 밟으며 스치듯 지난 사람들도 이내 그림자로 남는다. 그래! 기억이란 이렇게 쌓이는 것을, 나도 그렇게 그림자가 되는 것을...
이른 아침의 신천은 수묵화 느낌이 난다. 마치 안개와도 같은 농담(濃淡)은 도시의 모호함과, 욕망과, 그 짙은 그림자마저도 품는다. 저 잠잠한 강 어디쯤에 내 청춘의 기억이 잠겨 있을까? 바람 한 점 없는 이른 아침, 신천에서는 모든 것이 풍경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