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언덕 아래, 절벽의 견고한 성처럼 집들이 층층이 둘러싸고 있고 늦은 햇살 사이로 자전거를 끌고 가는 사람이 들어왔다. 겨울바람은 매서운데 파인더 속 세상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기만 하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봄도 아닌데 담장의 꽃잎이 마치 나비처럼 날고 있다.
달동네 언덕 아래, 절벽의 견고한 성처럼 집들이 층층이 둘러싸고 있고 늦은 햇살 사이로 자전거를 끌고 가는 사람이 들어왔다. 겨울바람은 매서운데 파인더 속 세상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기만 하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봄도 아닌데 담장의 꽃잎이 마치 나비처럼 날고 있다.
성곽과도 같은 언덕 길의 겨울 볕이 더욱 짧아졌다. 쪽빛 속에 열려 있는 저 창문은 누가 두고 떠난 것일까? 유년의 골목이 그립다.
속절없는 시간은 저무는데 길은 어디로 이어지고 있는가? 이제는 없는 허망한 어제와, 늘 기로에 서야 하는 오늘과, 실낱같은 내일이 교차하는 저 수많은 선들의 길 위에서 나는 무엇 때문에 걷고 있는가? 또 당신은 어디쯤에서 나를 보고 있는가? 아니 있기나 한가?
이제는 이름 없는 시장 골목, 오후 사이로 오토바이가 시간처럼 지나가고 그림자처럼 남아있던 이름들은 들판의 허수아비들처럼 낡아가고 있다.
햇볕을 등지고 소년이 달려 나갔다. 언덕을 넘어, 오늘을 넘어 눈앞에서 내일로 사라졌다. 겨울 볕은 남아 아직도 저리도 반짝이는데, 내 유년은 어디에 잠들어 있는가? 기억의 빈자리에 소년의 그림자만 환영처럼 남아있다.
그런 것이다. 인생의 다리 밑으로 햇빛이 가장 많이 들 때는 한낮이 아닌 늦은 오후인 것을, 나는 누구에게 마지막 남은 빛이 될 수 있을까? 아니 한 조각 빛이라도 될 수 있을까?
버스정류장은 늘 그 자리에 있는데 변하는 것은 지나는 사람들이다. 이런저런 삶들이 모여였다가 어디론가 사라지는 곳은 비단 버스정류장만은 아니리라. 내 인생에 있어 정류장은 얼마나, 또 어느 정도의 간격으로 남아 있을까? 그리 길지도 않은 삶이겠지만 산다는 게 참으로 명확하지 않다.
신천동 골목길을 집배원이 지나간다. 굽이굽이 꺾인 골목마다 사연 하나쯤 없는 곳이 어디 있을까? 젊은 집배원이 지난 길 위로 오후의 긴 나무 그림자가 편지 속 사연처럼 흐드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