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묶여 있는 배를 보았습니다. 배의 주인은 언제쯤 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게 될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나 역시도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미지(未知)에 대한 두려움이었든 도전의 실패에 대한 트라우마였든 간에 말입니다. 크고 화려한 배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조각배라도 타고 바다로 나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며칠째, 묶여 있는 배를 보았습니다. 배의 주인은 언제쯤 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게 될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나 역시도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미지(未知)에 대한 두려움이었든 도전의 실패에 대한 트라우마였든 간에 말입니다. 크고 화려한 배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조각배라도 타고 바다로 나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기억이 자리하는 곳은 어딜까? 사십여년 전, 호수의 조각배 위로 반작이며 부서지던 그 햇빛이 떠 올랐다. 파란 하늘, 검푸른 물빛 인데 여전히 흑백의 이미지로만 오버랩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어쩌면 기억이란 가슴에 새겨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성당보다 화려하고 빛나는 뒷편의 고층 아파트를 두고 마치 요즘의 종교나 권력을 상징한다고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그렇지만 종교는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람들을 지탱해 줄 때, 가장 밫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점에서 아파트보다 낮고, 성당보다도 더 낮은 십자가상은 그만큼 더 빛나고 거룩합니다.
과거든 현재든 '비극'은 극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 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폼페이에서는 그러하지 않은듯합니다. 한낮, 수많은 인파들이 넘쳐나는 관광지에서 애초 그러한 긴장감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하거니와 저 또한 겨우 몇 시간 머무르는 관광객의 시선을 벗어나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더라도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의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폐허의 도시를 복원한다는 것은 어쩌면 다시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쪼록 제 사진 작업도 사물의 해체와 복원 과정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조금이라도 더 보여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담은 햇살 비치는 하늘이고, 때로는 일렁이는 바다가 되기도 하며, 들판의 바람이 되기도 된다. 그 담에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꽃은 들어가 하나가 된다. 마치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벽화가 된다
이국에서 만나는 거리는 또 다른 새로움일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니 막상 거리에서 만나는 삶들은 별반 다를게 없었습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나 분주한 상점 앞의 인파, 무심히 지나가는 쇼윈도와 성당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미지에 대한 설레임이 그와 같은 허상의 기대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델로보성의 긴 굴속과 같은 통로를 지나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성을 짓기 위해, 그리고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국가나 권력을 위해 동원되어야 하는 민초의 삶은, 형태만 달라졌을 뿐이지 어쩌면 그때나 지금이나 본질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새가 닫혀진 공간이라면 바다는 열려진 공간입니다. 요새와 바다는 닫혀진 공간과 열려진 공간과의 경계이자 충돌지점입니다. 어쩌면 새로운 문화는 이렇게 접점의 충돌로 형성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여름, 도시의 회색 담장 화단에 꽃이 피었다. 골목 끝에서 바람이 불어와 꽃을 흔들었다. 꽃은 바람에 제 몸을 맡긴 채 흔들리디가, 흔들리다가 그렇게 담장에 흔적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