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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W

Photograph Story

사진이야기

시장 골목에서

by B&W posted Feb 2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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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빛바랜 포장 사이로 어둑한 시장 골목길이 드러난다. 지나는 사람이야 얼마 되지도 않고, 그 흔한 좌판도 이제 보이지 않지만 세월의 그림자는 곳곳에 얼룩처럼 남아있다. 인간의 삶이라는 게 시장의 흥망성쇠(興亡盛衰)와 별반 다를 것이 무엇인가? 시장의 길이 다하면 다른 길로 이어지듯, 내 삶의 길도 다하면 어디로 이어질까? 차라리 영영 소멸(消滅) 이었으면 좋겠다.




광장을 떠나며

by B&W posted Dec 2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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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손끝에 모아졌다. 세상은 이제 막 시작하는 그들의 몫이다. 그들의 광장은 더 이상 경계를 나누는 곳이 아니라, 밀실의 그림자가 지배하는 곳이 아니라 뜨겁고 빛나는 햇살이 가득한 아고라(Agora)가 될 것이다.




신천 - 그곳으로 가자

by B&W posted Dec 2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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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으로 가자. 좁고도 짧은 지하도를 지나, 햇살 눈부신 그곳으로 가자. 걸어서 가면 어떻고 자전거를 타면 또 어떠랴? 오후의 햇살이 타는 듯 가슴에 박혀도 그곳으로 가자. 피 흘리는 가슴 부여잡고 짙푸른 수의를 입은 그녀가 손짓하는 그곳으로 가자. 




신천 - 저녁 새

by B&W posted Dec 2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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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 새 한 마리 하늘을 날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아직도 비 내리는 저 마을, 빈 창가를 두드리는 새 한 마리 있으면 얼마나 가슴 떨릴까? 이렇게 신천에 홀로 눕는 너를 위해 지지배배 울어주는 저녁 새 한 마리 나 였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버스정류장 - 안개

by B&W posted Dec 2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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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버스에 오르고 내리는 것과 삶은 별반 다르지 않다. 조금 전 버스에 오른 듯한데 어느새 종점이 저만치에 있다. 시간이란 원래 그런 것일까? 가까이 다가올수록 더 빠르게 흐른다는 것이. 이 정거장과 종점 어디쯤에서 나는 내리게 될까? 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새삼 안도하면서도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이 그리 얼마 남지 않았음에 가슴 한구석이 자꾸만 일렁거린다. 이 나이에 남들 다 가는 길이 뭐가 두려울까 싶지만 집으로 가는 길, 버스 안은 짙은 안개로 가득하기만 하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by B&W posted Dec 1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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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한 잔에 낡은 그녀의 낡은 집 대문이 떠올랐다. 막걸리 두 잔에 얇은 양철지붕을 밤새 두드리던 빗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막걸리 세 잔에 그녀의 모습과 그녀의 추억과 그녀의 슬픔까지 건져 올렸다. 방금 건져진 그녀의 깊은 눈망울이 술잔에 떨어져 파르르 떨리고 나는 차마 그녀를 마주보지 못한다. 그간 얼마나 많은 날들이 흐르고 흘러 이제야 시간의 강가에서 이렇게 다시 만난 것일까? 빗소리에 다시 고개 들어보니 아린 흔적만 남겨두고 그녀는 어디에도 없다. 홀로 더듬는 기억이란 이렇게 끝도 없는 공허함으로 남는 것인가? 지워도 지워지지 않은 검댕이와 같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여!




광장 - 회색인(灰色人)

by B&W posted Dec 1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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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강할수록 경계는 명확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무엇을 보든, 무엇을 향해 가든, 무엇을 하든, 경계 너머의 위치로 모든 것들이 받아들여지기 마련이지만 경계 너머의 색은 또한 얼마나 제한적이고 얼마나 위선적이었으며 얼마나 큰 착시(錯視)였던가? 하지만 어쩌랴? 여전히 경계의 광장에서 한 쪽을 선택해야 하는 유혹은 늘 현실이 되고 일상으로 쌓이는 것을, 그리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나는, 너는, 우리는, 광장의 회색인(灰色人)인 것을...




신천 - 여름

by B&W posted Dec 1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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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가 신천을 스쳐 지나갔다. 지난겨울의 소묘와 같던 그 풍경은 모두 어디로 가고 한 여름의 눅눅하고 후텁지근한 모습으로 남았는가? 매미소리 한 점도 들리지 않는, 짙푸르다 못해 강 속으로 절명한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인가? 바람 한 점 없는 강가의 여름 한가운데 시간이 그렇게 멈춰 서있다. 아! 기나긴 여름이여, 지나간 청춘이여!




신천 - 이름

by B&W posted Dec 1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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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을 가로지르는 교각엔 저마다의 이름이 있다. 신천, 동신, 대봉, 희망, 상동... 그렇게 수많은 이름으로 번듯하게 서있다. 사람들이 이름을 가지듯, 다리들이 이름을 얻듯, 세상 만물엔 그렇게 이름이 있다. 길가의 들꽃에, 풀 포기에 처음으로 이름을 붙여준 이들은 얼마나 설레었을까? 교각 사이 비둘기들의 날갯짓에도, 다리 아래 가늘게 떨고 있는 햇살에도, 강을 거슬러 오르는 한 줄기 바람에도, 교각을 지나는 자전거의 따르릉 거림에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이름 하나 붙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광장에서

by B&W posted Dec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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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의 광장 위로 숙취가 채 가시지 않은 어제가 덤불처럼 굴러다닌다. 세기말의 풍경도 아닌데 이 아침의 광장은 왜 이리도 을씨년스러운 것인가? 광장이 갇혀 밀실이 되고 발 디딜 틈 없는 밀실은 광장의 가면으로 막 역에 도착하는 내일을 유혹한다. 오늘의 피는 아직도 뿌려지지도 않았는데 비둘기의 날갯짓 소리만 공허하게 광장에 눕는다. 오래된 광장이여 안녕, 내 안의 밀실도 이제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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