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을 바라본다는 것은 모든 것을 보는 것과 다름이 없다. 어느 날, 정면으로 바라본 시간이 풍경처럼 멈춰 서 있다. 사람들의 움직임도 없고, 그 흔한 새들의 날갯짓도 없다. 어느 순간 정지한 시간이 활시위처럼 팽팽히 당겨진다. 끊어질듯한 정적이 강 위로 흐른다. 아 그러고 보니 사진의 시간도 삶도 시간도 그렇게 닮아 있다.
Photograph Story
사진이야기
신천 - 시간
신천 - 색(色)
신천 - 꿈
보이지 않을 때, 더 멀리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빌딩과, 하늘과, 그리고 다리와 먼산에 이르기까지 보이는 것들을 넘어 석양에 빛나는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던 것들은 정녕 무엇이었을까? 문득 가슴이 뛰고, 나도 작은 바위처럼 아득한 봄날의 꿈을 꾼다.
동신교 - 집으로
집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나 또는 가족이 쉬거나 함께하는 공간이기도 할 것이며 누군가에게는 은밀한 비밀의 영역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집이 가지는 함의는 이러한 통속적 의미를 넘어서는 것이리라.
집이 '안(內)'의 세계라면 집 이외의 모든 세계는 '밖(外)'의 세계다. 일, 직장, 사람과의 관계도 밖의 영역이다. 밖의 세계와 안의 세계 중간쯤에 '다리(橋)'가 존재한다. 그것은 현실이자 관념이다. 그런 점에서 '동신교'는 집으로 이어지는 통로이기도 하다.
동신교에서 난, '빈방'으로 이어진 길고도 먼 '다리'를 만난다.
꿈
나무가 눕는다. 고분 위에 그림자로 누운 나무는 오래도록 꿈을 꾼다. 지난 가을의 그 짙었던 향기와, 금계국 위로 무수히 쏟아지던 여름날의 푸른 별빛이며, 가지를 스치고 지나는 봄날의 바람결과도 같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젊은 날들의 초상에 대한 꿈을 꾸고 있다. 그러고 보니 한 겨울,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가련한 꿈을 꾸는 것은 어쩌면 나무가 아니라 나 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의 무덤
현재는 없다, 현재라고 인식하는 순간 이미 그것은 과거가 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늘 시간의 무덤 위에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선(線)과 면(面), 그리고 기억(記憶)
선(線)과 면(面)이 만나면 공간(空間)이 된다. 공간은 다시 누군가의 기억(記憶)이 되고 기억은 시간(時間)의 흔적(痕跡)으로 남는다. 고분군에서 나는 아득한 선과 면의 기억을 더듬고 있다.
다시 아양교에서
비 오는 소리에 눈을 떴다. 풀 향기 가득한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이 그리워졌다. 다시금 찾은 어제의 강가에도 비는 내리고 그녀의 빈자리만 휑하니 남아있다.
아양교에서
왜 였을까? 새벽의 강과, 물 안개와, 일출이 문득 떠오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꿈인 듯 현실인 듯 새벽의 강에서 나는 물기 가득한 그녀의 머리결을 건져올린다.
신천동 - 눈 오는 날
성(城)으로 가는 언덕 골목길에 눈이 내린다. 사박사박 쌓이는 눈을 지나는 그녀의 빨간 우산이 골목에 가득 찼다. 문득 벽화 속에 사는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언덕 골목에 또다시 눈만 내리고 이윽고 성으로 향하는 길도, 나도 벽화처럼 눈 속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