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 Story
사진이야기
신천동 - 밤
신천동 - 화석(化石)
신천동 언덕 골목의 담은 높고도 짙다. 언덕의 높이만큼 삶의 흔적 또한 쌓이고 또 쌓였으리라. 나는 이 아득한 골목의 심연에서 문득 멸종한 물고기의 '화석(化石)'을 떠올린다. 그네들의 삶도, 내 사진도 언젠가 물고기의 비늘과도 같은 화석 한 조각으로 남을 수 있을까?
신천 - 유년(幼年)의 기억
기억한다는 것은 현실과 과거의 사이에 놓여 있는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과 별단 다르지 않다. 미세먼지가 가득하던 어느 날, 신천의 강가에서 나는 모래처럼 반짝이던 유년(幼年)의 기억을 그렇게 한 움큼 건져 올렸다.
신천 - 일모도원(日暮途遠)
해가 지면 새들은 저마다의 집으로 돌아간다. 사람들도 새삼 분주한 모습으로 그렇게 하루를 걷고 나면 얼마 남지 않은 빛 자락은 더 선명한 모습으로 강 속 깊이 눕는다. '일모도원(日暮途遠)', 나 저 황혼의 끝에 어떤 모습으로 서게 될까?
신천 - 봄의 길목
봄이 오는가 보다. 긴 강을 지나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그렇게 봄이 다가오는가 보다. 나무들이며 하늘이며 사람들까지, 이미 신천은 온통 새 계절의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다. 시간은 언제나 떠밀려 사라져 가는 것일까? 꽃망울 터지듯이 찬란하던 청춘의 날들은 기억에 남아 있기나 할까? 아직 오지도 않은 봄이 못내 처연하다.
신천 - 새
공간을 살아나게 하는 것은 움직임이다. 사람이든, 새든, 나뭇가지나 물결의 흔들림이든 움직임은 살아 있음을 반증한다. 어쩌면 산다는 것도 그러하다. 일상에서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는 그 순간이란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일인가?
신천동 - 성(城)과 골목
신천동 산동네 골목에 오후의 짧은 햇살이 스친다. 골목을 둘러싼 성(城)들은 날마다 자란다. 마치 여름날 담쟁이덩굴처럼 동네보다, 산보다, 더 높게 자란다. 더 이상 밀려날 곳이 없는 사람들의 끝에서 그렇게 성(城)은 더 빨리, 더 크게 자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디를 다녀오는 것일까? 그들이 지나간 겨울 골목에 긴 그림자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신천 - 오후
겨울 오후, 나른한 볕이 눕는다. 산을 넘고, 빌딩 숲을 지나, 때로는 물결을 건너온 볕이, 서산에 잠들기가 못내 아쉬워 짙은 그림자로 눕는다. 사람들 사이로 풀잎처럼 볕이 눕는다.
신천 - 빈 방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있다. 눈이 쏟아질듯하다." -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 시작(詩作) 메모 중에서 -
그가 잠언을 찾아 떠난 빈 집에서, 빈 방에 홀로 남은 그의 쓸쓸한 사랑의 그림자를 보고 있다. 나는 아직도 그 빈 방에 들어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들어서야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렇게 몇 년째 나무처럼 서 있다. 빈 집에 가녀린 햇살이 잠긴다.
신천 - 여운(餘韻)
철컹철컹, 기차가 신천철도교 위를 지난다. 저 기차는 어디로 향하는 길이길래 이토록 긴 여운으로 남아 귓가를 맴도는 것일까? 누군가 "아쉬움이 사진의 맛"이라고 했지만 난 여전히 내 사진에서 아쉬움을 넘어 부족함을 본다. 철길 위를 지나는 기차소리처럼, 신천 강변을 지나는 저들의 뒷모습처럼, 내 사진도 긴 여운의 맛을 남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