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저마다의 바다가 있다.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성 같은 바다도 있고, 잔잔한 파도에도 무너져 내리는 그런 여린 바다도 있다. 분명 바다는 하나인데도 수만은 사람들의 가슴에서 나무처럼 자라고 뿌리를 내린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내 오랜 기억의 강을 지나 다시 바다로 향하는 연어의 꿈을 꾼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저마다의 바다가 있다.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성 같은 바다도 있고, 잔잔한 파도에도 무너져 내리는 그런 여린 바다도 있다. 분명 바다는 하나인데도 수만은 사람들의 가슴에서 나무처럼 자라고 뿌리를 내린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내 오랜 기억의 강을 지나 다시 바다로 향하는 연어의 꿈을 꾼다.
갈매기 사진을 올리고 보니 생각이 났다. 고 김성민 씨의 회복을 기원하는 '한 사진기 수리공의 이야기' 전시회에 출품했던 갈매기 사진도 있었다는 것을.. 그때는 '희망'이라는 제목을 달았었다. 희망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천만 분의 일, 만 분의 일, 아니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기적이라 할지라도 희망이란 원래 그런 곳에서 피어나는 법이고 그래서 더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이 저녁에 서른다섯에 떠난 아름다운 그가 그립다.
하늘을 나는 것들이라고 해서 보다 특별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시각일 뿐이다. 내게 있어서 삶이란 신의 영역에서나 평가 가능한 절대적 기준보다는 평범한 인간의 상대적 영역에 속해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한 일상으로부터 소소한 일탈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속살을 드러낸 바다 위로 자신 또한 그대로 드러낸 배를 보다 문득 '목선의 오후'라는 희미한 기억 속에 감추어져 있던 카페가 떠올랐다. 작은 창, 몇 개의 탁자와 삐걱거리던 나무 바닥, 그리고 작은 창으로 길게 내리던 오후의 햇살. 나는 그곳에서 청춘의 한 여름을 보냈었다. 한 번쯤 누구나 만났을 빛나던 햇살의 느낌은 아직 이렇게 선명한데 이제 그곳도 없고 그곳의 나도 없다. 그리고 저 배의 시간도 이렇게 사진으로만 남아있다.
금방이라도 누가 골목을 돌아서 나올듯하다. 호박 덩이만한 돌마다 이끼가 끼고 덩굴이 세월처럼 우거져 내렸어도 이런 담이 나는 좋다. 골목이 골목답고, 길이 길답고, 사람이 사람다와 보여서 나는 좋다. 그래서 나는 이방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