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왜 ‘정체성(正體性)’에 집착할까? 가끔 불현듯 만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비단 호모 사피엔스의 의문 때문만은 아니리라. 어쩌면 삶을 관통하고 있는 불확실성과 모호함에 대한 반작용의 영향이 더 큰 것은 아닐까? 내 사진, 아니 내게 있어 사진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끝나지 않을, 아니 애초부터 없는 것인지도 모를 그 희미한 그림자에 나는 매달려 있다.
사람은 왜 ‘정체성(正體性)’에 집착할까? 가끔 불현듯 만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비단 호모 사피엔스의 의문 때문만은 아니리라. 어쩌면 삶을 관통하고 있는 불확실성과 모호함에 대한 반작용의 영향이 더 큰 것은 아닐까? 내 사진, 아니 내게 있어 사진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끝나지 않을, 아니 애초부터 없는 것인지도 모를 그 희미한 그림자에 나는 매달려 있다.
아직 여름이 채 가시지 않은 초가을 신천에 파도가 인다. 오후는 아직도 등 뒤에 걸려 있는데 하늘에서부터 짙은 구름이 몰아치고 내 마음도 덩달아 파도처럼 일렁거린다, 깊지 않은 마음이란 이리도 흔들리기 쉬운 것인가? 상처가 아무는 것이 이리도 쉽지 않은 것인가?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쏟아질듯하다. 이런 날은 가까이 있는 것들보다 멀리 있는 것들이 더 선명히 다가선다.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기억 속의 거리가 마주 닿을 듯 가까워지면 심우(心雨)가 쏟아지리라. 비 내리는 이 깊은 마을의 어디쯤에서 나는 심우(尋牛)를 만나게 될까? 아니 만날 수나 있을까?
섬이 있다. 보일 듯 말 듯 한 그 섬이 있다. 갈매기 한 마리 날지 않는 이 상념의 끝에서 둥둥 바다로 떠난 그 오래된 섬이 내 가슴에 있다.
도시인은 도시를 벗어나지 못한다. 어딜 가도 도시의 흔적이 그림자처럼 뒤따른다. 도시의 그림자는 그렇게 생활을, 시간을, 삶을 지배해 온 것인지도 모른다. 도시인은 늘 도시 밖을 꿈꾸지만 도시의 그림자는 도시보다 더 크고, 더 빠르며, 더 견고한 모습으로 도시를 덮고 도시인들을 삼킨다. 아! 그러고 보니 이곳은 한 번 발 들이면 헤어날 수 없는, 평온함이 진저리 처지는 개미지옥이다.
다가서지 못하는 사랑이란 참으로 애달프다. 무릇 천년의 세월 동안 쌓이고 쌓인 그리움의 무게는 얼나마 큰 것일까? 애달픈 사랑 위로 빛줄기가 쏟아져 내린다.
강가에 앉으면 소리가 들린다. 강을 건너온 바람 소리며 아직 건너편 마을 뒷산에 남아 흔들리는 때늦은 여름 나뭇잎의 속삭임과 강을 거슬러 오르는 거대한 물고기의 펄떡거리는 심장소리까지, 그 모든 소리들이 철벅철벅 몰려온다. 기억의 강이란 이렇게도 깊고 푸른 모습인 것일까? 강가에 앉아 그 모든 소리들보다 더 투명하며 그녀의 젖은 머리칼보다 더 짙은 기억의 소리를 건져 올리려 애쓰지만 내 손끝에 남은 것은 기억도, 소리도 아닌 그저 눈물과도 같은 시간의 흔적뿐이다.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또는 무엇을 만나는 것일까? 아니 무엇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 모두가 바다에서 건져 올리는 것은 오래전 망각한 모태(母胎)의 기억 한 조각 인지도 모른다.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는 것은 비단 버스만은 아니다. 잠시 후면 만나게 될 사람들이며 혹은 여행에 지친 몸을 뉠 수 있는 작은방의 편안함과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뒷모습에는 그런 기다림이 한가득 묻어난다. 기다리던 버스가 하나, 둘 도착하고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빈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남긴 그 기다림의 흔적(痕迹) 들이 낙엽처럼 맴돌고 있다.
신천에 구름이 가득하다. 어느 먼 곳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구원이 보이지 않는 신전의 세상에서 변화도, 혁명도 어쩌면 그렇게 오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