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깊고도 높은 언덕 골목의 끝은 어디쯤일까? 골목을 바삐 오르는 사람의 발소리도, 그것을 지켜보는 나도 숨이 가쁘다.
이 깊고도 높은 언덕 골목의 끝은 어디쯤일까? 골목을 바삐 오르는 사람의 발소리도, 그것을 지켜보는 나도 숨이 가쁘다.
좁고 낡은 골목에 비가 내린다. 오래전 입춘도 지났으니 봄비가 틀림은 없으련만 골목엔 아직도 겨울이 그림자처럼 남아 있다. 이 비 그치고 귓가에 바람이 살랑거리면, 담장 아래 다시금 새싹이 돋아나면, 지나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벼워지면 봄이 온 것일까? 정말로 그 봄이 다시 온 것일까?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가? 동성로 화려한 거리의 또 다른 골목길 한 켠에 밤이 내린다. 인생의 골목도 이런 모습일까? 누군가 스쳐 지나간 골목에 밤이 마치 눈처럼 쌓이고 있다.
몇 년 간의 시간만으로 타인의 시선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골목에 적을 두고 그들과 부대끼지 않는 이상 이 골목을, 이 마을의 사람들을 온전히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여전히 나는 이 골목을 서성이는 타인의 그림자와 같다.
가족 모두가 어디를 가는 것일까? 아니면 이 골목 어느 집을 다녀오는 것일까? 가뜩이나 낡고 휑했던 골목이 모처럼 환해졌다. 그래! 가족이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동인동 일대는 여전히 미개발 지역입니다. 요즘 들어 재개발이 확정된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동네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미로와도 같은 골목과 마주합니다. 가끔은 할머니들이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생선을 굽는 냅새가 흘러 나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집은 이미 오래전에 주인이 떠난 듯 굳게 닫힌 문과 무심한 풀들이 담장만큼 자라 있기도 합니다. 오래전에 이 길로 총총걸음으로 지났을 학생들과 뒷짐을 지고 헛기침을 하며 느릿느릿 걷는 할아버지와 꼬부랑 지팡이의 할머니도 지났을 것이며 머리에 고무대야를 인 어미니와 자전거를 탄 아버지도 지났겠지요. 현실과 기억은 동인동 길에서 서로 구부러져 교차하고 있고, 그 위로 6월이 햇살만이 말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습니다.
신천동 산동네 골목에 오후의 짧은 햇살이 스친다. 골목을 둘러싼 성(城)들은 날마다 자란다. 마치 여름날 담쟁이덩굴처럼 동네보다, 산보다, 더 높게 자란다. 더 이상 밀려날 곳이 없는 사람들의 끝에서 그렇게 성(城)은 더 빨리, 더 크게 자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디를 다녀오는 것일까? 그들이 지나간 겨울 골목에 긴 그림자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성곽과도 같은 언덕 길의 겨울 볕이 더욱 짧아졌다. 쪽빛 속에 열려 있는 저 창문은 누가 두고 떠난 것일까? 유년의 골목이 그립다.
오래된 골목에 하루가 저물어 간다. 여름날, 저 대문 담장 위로 가득 피었던 능소화는 다 어디로 가고 이제 낡은 시간만이 전설처럼 남아 있는가? 인생의 골목이란 그런 것인가? 저물어 가는 하루가 애닯프다.
크리스마스 이브, 신천동 골목을 걸어간다. 유치원에서 나온 아이들이 엄마 손을 붙잡고 재잘거리며 지나기도 하고 때로 청년의 종종걸음은 이내 시야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오후의 늦은 빛이 어느 집 앞에 모여있다. 고개 숙인 그녀의 순간은 사진으로 남을 수도 있겠지만 청춘의 그 짧은 기억들은 이제 흔적마저도 가물거린다. 시간의 골목길에 볕이 저물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