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 플랫폼에 서면 언제나 설렌다. 아득한 시절, 철길 위를 지나는 기차소리가 가슴속 깊은 곳에 박혀있는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역 플랫폼에 들어서면 아직도 가슴이 저만치서부터 뛴다. 저 빛살의 폭포 사이를 사이를 가르고 금방이라도 기차는 기적을 울리며 들어설듯하고 나는 엄마 손을 꼭 쥔 일곱 살 소년이 된다. 기억의 치환(置換)이란 이런 것인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나를 찌르고 있다.
역 플랫폼에 서면 언제나 설렌다. 아득한 시절, 철길 위를 지나는 기차소리가 가슴속 깊은 곳에 박혀있는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역 플랫폼에 들어서면 아직도 가슴이 저만치서부터 뛴다. 저 빛살의 폭포 사이를 사이를 가르고 금방이라도 기차는 기적을 울리며 들어설듯하고 나는 엄마 손을 꼭 쥔 일곱 살 소년이 된다. 기억의 치환(置換)이란 이런 것인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나를 찌르고 있다.
다가서지 못하는 사랑이란 참으로 애달프다. 무릇 천년의 세월 동안 쌓이고 쌓인 그리움의 무게는 얼나마 큰 것일까? 애달픈 사랑 위로 빛줄기가 쏟아져 내린다.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또는 무엇을 만나는 것일까? 아니 무엇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 모두가 바다에서 건져 올리는 것은 오래전 망각한 모태(母胎)의 기억 한 조각 인지도 모른다.
바다의 끝에서, 땅의 끝에서 너를 보내고 왔다. 갔던 길 되밟고 나오는 길은 노을보다 더 붉은 슬픔이라는 것을, 파도 소리보다 더 깊은 아득한 그림자로 남긴다는 것을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왜 였을까? 새벽의 강과, 물 안개와, 일출이 문득 떠오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꿈인 듯 현실인 듯 새벽의 강에서 나는 물기 가득한 그녀의 머리결을 건져올린다.
강 속, 도시의 해는 조금 더 늦게 떠오른다. 공간이 상대적인 것처럼 그렇게 시간도 상대적으로 흐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누군가의 기억이라는 공간 속에서 또 다른 나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이제는 희미한, 그 스무 살의 아침이 아리도록 그립다.
신천동 거리의 밤은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옅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옅어진 밤 사이로 한껏 취기가 오른 사람들이 지나거나 아직도 흥이 남아있는 사람들이며 뒤늦은 바쁜 걸음들이 옅은 어둠을 대신 채우기도 한다. 그러다 거리의 불빛이 하나 둘 잦아들면 다시금 하루가 시작되고 전봇대의 전단이며 빈 박스 사이로 어제의 초상이 그림자처럼 남아 흔들린다.
신천동 언덕 골목의 담은 높고도 짙다. 언덕의 높이만큼 삶의 흔적 또한 쌓이고 또 쌓였으리라. 나는 이 아득한 골목의 심연에서 문득 멸종한 물고기의 '화석(化石)'을 떠올린다. 그네들의 삶도, 내 사진도 언젠가 물고기의 비늘과도 같은 화석 한 조각으로 남을 수 있을까?
원두를 갈고 커피를 내린다. 짙은 커피를 마시면서도 달달한 다방커피가 또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낡은 사진의 달달한 그 맛이 그리운 것일까? 아니면 실없는 농담이 오가는 다방의 달달한 풍경이 새삼 그리운 나이가 된 것일까?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사진을 들여다본다. 도시의 한 켠이 마치 커피처럼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