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동 산동네 골목에 오후의 짧은 햇살이 스친다. 골목을 둘러싼 성(城)들은 날마다 자란다. 마치 여름날 담쟁이덩굴처럼 동네보다, 산보다, 더 높게 자란다. 더 이상 밀려날 곳이 없는 사람들의 끝에서 그렇게 성(城)은 더 빨리, 더 크게 자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디를 다녀오는 것일까? 그들이 지나간 겨울 골목에 긴 그림자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Photograph Story
사진이야기
신천동 - 성(城)과 골목
신천동 - 사이
텅 빈 거리를 오토바이가 달려간다. 등 뒤로 쏟아지는 오후의 햇살을 뚫고 오토바이가 무심히 달려간다. 시간과 시간, 날과 날 사이를 명확하게 가를 수 있다면 그 사이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겨울과 봄 사이에 긴 하루가 또 그렇게 지고 있다.
신천동 - 봄 꽃
구름 한 조각이 마치 연기처럼 높다란 지붕 위에 걸렸다. 해 그림자 골목에 눕고 나면 밥 짓는 연기며 생선 굽는 냄새가 골목을 가득 메울까? 가로등 불빛 사이로 바쁜 귀가의 발걸음 너머, 온 가족 도란도란 모여않아 오래전 기억 속 그 '봄꽃' 피울 수 있을까?
신천동 - 밤
신천동 - 바보
택시에서 초로의 두 사람이 내렸다. 어디서 전작이 있었는지 취기를 어둠에 남기고 익숙한 모습으로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문득 '중국산이 아닙니다'는 어느 나라의 생수 브랜드가 떠올랐다. 시대의 역설적 표현인지, 순진무구함에 대한 차별적 전략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는 바보가 그리운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향수가 어둠보다 더 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천동 - 마음
늘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찰나의 사진도 그러한데 이 변덕스러운 마음의 갈피야 오죽하랴? 신천동 골목 언덕길에 나를 두고 눈을 감는다. 어쩌면 밤보다 낮의 시간이 더 깊고 아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천동 - 동행
신천동 언덕길을 부부가 함게 내려가고 있다. 함께 하는 모습은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다운 법이지만 오랜 시간 함께했을 동행의 모습에서 새삼 나는 여름날 강가의 조약돌보다 더 빛나는 삶을 본다. 나도 저럴 수 있을까? 신천동 오후의 그림자는 길어만지는데 인생의 내리막길, 그 길을 함께하는 저들의 동행은 참으로 아름다운 소풍 길의 모습이다.
신천동 - 눈 오는 날
성(城)으로 가는 언덕 골목길에 눈이 내린다. 사박사박 쌓이는 눈을 지나는 그녀의 빨간 우산이 골목에 가득 찼다. 문득 벽화 속에 사는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언덕 골목에 또다시 눈만 내리고 이윽고 성으로 향하는 길도, 나도 벽화처럼 눈 속에 묻혔다.
신천동 - 노을
달동네 성당 너머로 첫날이 저문다.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하루가 다시금 첫 날로 돌아와 눕는다. 언제 종소리가 울린 적이 있었던가? 아릿한 시간 너머로 노을이 저물고 있다.
신천동 - 꽃잎
달동네 언덕 아래, 절벽의 견고한 성처럼 집들이 층층이 둘러싸고 있고 늦은 햇살 사이로 자전거를 끌고 가는 사람이 들어왔다. 겨울바람은 매서운데 파인더 속 세상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기만 하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봄도 아닌데 담장의 꽃잎이 마치 나비처럼 날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