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신천을 스쳐 지나갔다. 지난겨울의 소묘와 같던 그 풍경은 모두 어디로 가고 한 여름의 눅눅하고 후텁지근한 모습으로 남았는가? 매미소리 한 점도 들리지 않는, 짙푸르다 못해 강 속으로 절명한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인가? 바람 한 점 없는 강가의 여름 한가운데 시간이 그렇게 멈춰 서있다. 아! 기나긴 여름이여, 지나간 청춘이여!
장맛비가 신천을 스쳐 지나갔다. 지난겨울의 소묘와 같던 그 풍경은 모두 어디로 가고 한 여름의 눅눅하고 후텁지근한 모습으로 남았는가? 매미소리 한 점도 들리지 않는, 짙푸르다 못해 강 속으로 절명한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인가? 바람 한 점 없는 강가의 여름 한가운데 시간이 그렇게 멈춰 서있다. 아! 기나긴 여름이여, 지나간 청춘이여!
신천교 아래로 자전거들이 달려 나갔다. 지나온 시간들을 뒤에 두고, 때로는 기억을 묻어두며 그렇게 줄지어 달려가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저 빛나는 아침햇살을 향해 달려가는 많은 사람들의 앞날이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 슬픔보다 기쁨이 조금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쏟아질듯하다. 이런 날은 가까이 있는 것들보다 멀리 있는 것들이 더 선명히 다가선다.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기억 속의 거리가 마주 닿을 듯 가까워지면 심우(心雨)가 쏟아지리라. 비 내리는 이 깊은 마을의 어디쯤에서 나는 심우(尋牛)를 만나게 될까? 아니 만날 수나 있을까?
실제보다 허상이 더 많은 것을 보여 주듯이 거꾸로 보는 것이 더 많은 것을 담게 하기도 한다. 세월이 흘러간다는 것,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그것은 높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깊어져야 하는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얼마 남지 않은 오후의 햇살이 강 위에 눕는다. 강 위에 부서진 햇살은 조금씩 더 깊게 누우면서 흐느끼듯 운다. 강 위로 끝없이 퍼지는 파문은, 어쩌면 모든 이들의 하루와 함께한 시간의 울음인지도 모른다.
밤을 새운 날은 그 밤의 크기만큼이나 강의 그림자가 깊어진다. 나이를 더할수록 강의 깊이는 알 수 없어지고 또 그만큼이나 낡아만 간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마치 벌레가 나뭇잎을 갉아먹는 것과도 같다. 때로는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 더 명징하게 진실을 보여준다지만 새삼 이 꿈결같은 강가에 이러러서야 나는 비로소 금빛 시간의 벌레와 마주한다.
정면을 바라본다는 것은 모든 것을 보는 것과 다름이 없다. 어느 날, 정면으로 바라본 시간이 풍경처럼 멈춰 서 있다. 사람들의 움직임도 없고, 그 흔한 새들의 날갯짓도 없다. 어느 순간 정지한 시간이 활시위처럼 팽팽히 당겨진다. 끊어질듯한 정적이 강 위로 흐른다. 아 그러고 보니 사진의 시간도 삶도 시간도 그렇게 닮아 있다.
소묘(素描)의 계절이 왔다. 까쓸까쓸한 소묘의 계절이 왔다. 나무들은 저마다의 살갗을 온전히 드러내고 세련된 욕망과, 빌딩 뒤의 허무한 그림자와, 눈길조차 없는 차가운 도시의 소리는 점점 더 확연해진다. 때로 검거나 흰 것이 더 명확할 수도 있는 법이지만 마른 시선으로 어찌 젖은 삶의 너머를 볼 수 있을까? 풀잎이 눕는 강 너머로 소묘의 계절이 또 찾아왔다.
익숙한 것들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러하고 사진 또한 그러하다. 늘 옆에 있는 신천이지만 '소묘(素描)'와도 같이 사각거리는 풍경이 참으로 좋다.
재개발 지역 아파트들은 굳건한 성(城) 이었다. 그곳을 나와 다시 보니 구름이며 하늘, 강 둑의 나무숲도 더 큰 성(城)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고 보니 모든 것이 공(空)이고 또한 모든 것들이 공(空)이 아니었구나.